두 얼굴의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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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민들레는 흔한 꽃이다. 4월에 핀다.

시골의 길섶, 물결소리가 들리는 앞동산이며 골목 울담 아래. 집 어귀며 봄이 오는 길목 아지랑이 일렁이는 언덕에도 바닥에 바짝 붙어 앉아 노랗게 피어 눈길을 끌었다. 작지만 가을 서릿발에 피는 국화에 뒤질라 핀 샛노란 색깔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려 있는 꽃인데도 어린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은, 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해 마냥 봄을 즐기는 그 낙천성에도 끌렸을 터이다.

국화과의 한 붙이라고 민들레에게 흙 한 삽 떠 북돋아 준 적 없고, 봄가물에 목 축이고 물 한번 뿌려 준 사람이라곤 없다. 그런다고 입 비죽 내밀며 투덜대거나 누구에게 눈 한번 흘기거나 낯 한번 찡그리는 걸 본 적이 없다. 봄이 한창 흐드러진 좋은 절기에 꽃대를 뽑아올려 내려앉는 따순 햇볕에 몸 풀고 부슬비에 목축이며 피어나는 꽃. 사람의 손 한번 탄 적 없는, 그리하여 네 이름은 영락없는 잡풀때기였구나.

나는 좋아하는 만큼 익히 너를 안단다. 어느 봄날 불현듯 꽃대 대여섯을 쑥 뽑아 올리더라니. 노란 네 꽃이 피고 진 적 없이, 피던 적의 모습 그대로 여실히 봄 한 철을 보내고, 한순간 네 머리에 얹는 솜털모자, 그게 바로 번식을 위한 씨앗이었구나. 건듯 지나는 바람에도 산지 사방으로 흩날려 퍼지는 네 종족의 씨앗. 네게 향기가 왜 없을까. 대놓고 얘기해 좋은 향기는 아니어서, 웬만한 들꽃에서 나는 향기로 좋게 말해 꼬릿꼬릿하다고 할까. 손 한번 내밀어 쓰다듬어 주지 않았으면서 국화나 매화나 백합같이 사르르 눈 감게 하는 감미로운 향기를 어찌 바라랴. 그거야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의 욕심일 뿐.

땅속으로 내린 뿌리가 놀랍게도 기다랗다. 자근자근 밟아도 죽지 않는다. 이 정도가 아니다. 제초제를 뿌려도 잘 듣지 않는단다. 잔디 마당에 뿌리 내리면 고약하게 골칫거리,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다. 그처럼 순진하게 노란 꽃이 괴팍한 성깔을 숨겨놓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유입종 개민들레가 있다. 접두사 ‘개’가 붙었으니 개살구 짝으로 진짜 아닌 가짜인가. 꽃대가 겅중 길어 엉성한 녀석인데 토종에 비해 꽃은 작아도 빛깔은 어금버금으로 깔축없이 노랗다. 외국에서 갑자기 들어온 것이 신고도 없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교란시킨다고 다들 손가락질이더니, 그런 건 전혀 아닌 것 같다. 눈치 보며 그새 꽤 오래 견뎌 왔다. 번식력도 강한 깐에 박정하게 퇴치하지도 못하니, 귀화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어느 학교 비탈진 곳에 눈이 끌려 보았더니, 개민들레 꽃밭이었다. 봄바람에 살랑대는 춤사위가 사뭇 눈 간지러웠다. 자연이 만들어 낸 작품이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들레는 얼굴이 둘이다. 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한 바닥에 뿌리 내렸으니 소중한 인연이지, 차별할 게 무언가. 토종이든 개민들레든 이참에 민들레 꽃밭을 만들면 어떨지. 지독히 번식력이 강한 데다 워낙 강력해서 방제를 포기할 정도다. 절대 죽지 않는다. 우리 게으른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겠다.

한번 심어 놓으면 매년 봄꽃 심을 필요없이 샛노란 꽃밭을 감상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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