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9세 제주청년, 국내 소프트웨어에 날개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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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사정에도 장학금 받으며 학업 이어가
IT천재도 풀지 못한 최대 난제 해독...'실크로드소프트' 창업
행안부.금융권 기술 도입...영국에 글로벌 본사 설립하는 길 열려
윤정일 실크로드소프트 대표가 경기 수원 광교테크노밸리에 있는 사무실에서 특허증과 우수 발명품 인증서를 보여주고 있다.
윤정일 실크로드소프트 대표가 경기 수원 광교테크노밸리에 있는 사무실에서 특허증과 우수 발명품 인증서를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을 IT강국이라고 하지만, 인터넷만 빠를 뿐 소프트웨어 원천 기술은 걸음마 수준이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을 만들어도 운영체제는 구글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이유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1976년 세계 최초 개인용 컴퓨터 ‘애플Ⅰ’에 이어 1984년 복잡한 명령어 입력 대신 마우스와 아이콘으로 작동하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개발했다. 이 같은 혁신은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윤정일 실크로드소프트 대표이사(39)는 데이터베이스 분야에 혁신을 불러오고 있다.

▲하교 후에는 공사장에서 일했던 섬 소년

윤 대표는 1983년 제주시 칠성로에서 1남1녀 중 둘째로 출생했다. 아버지는 작은 공업사를 운영하면서 공사장을 전전했다. 가난 때문에 온 가족이 공업사 한 켠에 천막을 치고 살기도 했다.

윤 대표가 제주동초등학교를 졸업, 제주중학교에 입학한 1995년. 공업사는 부도가 났고 가족들은 빚에 쪼달리며 건입·화북·도련동에 이어 삼양동으로 몰래 이사를 가야했다.

“중학생 시절 공부는 학교에서만 할 수 있었죠. 집에 오면 아버지와 함께 공사장에서 일했습니다. 시험기간에도 공부보다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먹고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도 이해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는 제주중을 졸업, 부산과학고에 입학했다. 대다수 동기들은 이른바 ‘스카이캐슬’에 살았고 자존심 때문에 장학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 덕에 그는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2001학년도 수능은 역대급 ‘물수능’으로 만점자가 66명이나 나왔다. 과학고 출신인 그는 내신에서도 불리했다. 부산대 4년 장학생으로 합격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재수를 하겠다고 아버지에게 말했지만 그럴 여건이 안됐다. 수능이 끝나고 부산에 머물면서도 끼니부터 걱정해야 했다.

울산대에서 학비는 물론 의식주까지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컴퓨터·정보통신공학부에 입학한 그는 2004년 3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1970년 울산대 개교 이래 조기 졸업자는 윤 대표가 처음이었다.

이어 포항공대 대학원에 진학해 암호학을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윤정일 대표가 중학교 2학년 때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모습. 그는 하교 후에는 아버지와 함께 일을 했다고 회고했다.
윤정일 대표가 중학교 2학년 때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모습. 그는 하교 후에는 아버지와 함께 일을 했다고 회고했다.

▲IT업계의 최대 난제, 비밀을 풀어내다

그는 2006년부터 10년간 국내 1위 소프트웨어회사인 티맥스소프트웨어와 1년 반 동안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일했다.

예전에 다음 포털에서 제공했던 로드뷰와 커뮤니티 ‘아고라’는 접속이 느렸다.

직원들은 이 문제를 알았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는 서비스를 멈추지 않고 최신 버전으로 전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런데 공적을 팀장이 가로채면서 그는 다음을 떠났다. 당시 IT업계에서 이 기술은 10년을 앞선 것으로 내다봤다.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해 미국 유학을 준비했던 그는 전 세계 데이터베이스(DB) 시장을 지배한 미국의 오라클 운영체제에 관심을 가졌다.

오라클이 데이터 시장을 석권한 이유는 첨단 분석기능으로 고객의 스펙과 생산 일정, 재고, 품질·판매, 서비스, 물류, 의사 결정 등 통합 솔루션을 제공해서다.

글로벌 IT기업들은 오라클이 보유한 막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복제하는데 도전했다. 문제는 기존 데이터를 복제하는 동안 새로운 데이터와 충돌하는 오류가 발생했다.

은행에서는 명절 때마다 서비스 점검을 이유로 거래를 일시 중단한다. 이는 시스템을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복제하는 동안 새 데이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물이 새는 수도관을 고치려면 수도꼭지를 먼저 잠그는 원리와 같다.

윤 대표는 데이터 복제 중에도 새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동기화 운영체계를 개발해냈다. 비밀의 열쇠는 오라클의 ‘리두 로그(Redo Log)’에 있었다. ‘리두 로그’는 데이터가 손상돼도 복구할 수 있는 기록파일이다.

IT천재들도 ‘리두 로그’ 비밀을 풀지 못하면서 전 세계 기업과 기관들은 막대한 비용을 내고 오라클을 사용해야 했다.

회사에서 불가능한 미션들을 맡아서 해결해왔던 윤 대표는 ‘나였으면 이런 방식으로 기술을 개발했을 것’이라며 비밀의 열쇠 찾기에 나섰다. 실시간 동기화가 가능하면서 데이터베이스 복제 시간을 최소화한 IT업계의 최대 난제를 드디어 풀었다.

“그 당시 신 내림과 같은 운이 따랐다. 온갖 형태의 알고리즘과 추측을 대입해도 비밀을 풀어낼 확률은 수 천만분의 1에 불과했다. 로또는 당첨자라도 나오지만, 솔직히 말해 로또에 100번 당첨되는 확률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윤 대표가 해독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암호를 풀어내면서 오라클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출시됐다. 그는 미국 유학을 접고 2015년 12월 실크로드소프트를 창업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일본이 먼저 인정해줬다

윤 대표는 전산센터를 운영하는 기업을 방문, 전산 담당자를 만났지만 ‘실크로드’ 도입을 꺼려했다. 생소한 브랜드를 도입했다가 전산망에 오류가 생기면 업무 마비는 물론 고객 항의가 빗발쳐서다.

‘기술 수준은 잘 알겠는데 다른 곳에서 먼저 도입하면 검토하겠다’는 말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영업 중단 없이 데이터 복제와 실시간 동기화로 서비스를 업데이트 해주는 기술은 일본이 먼저 알아줬다.

2019년 일본 1위 티케팅 업체인 ‘e+동경’은 데이터베이스 엔진 업그레이드에 실크로드를 채택했다.

중국 화웨이는 클라우드 솔루션을 ‘스마트로드’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실크로드를 OEM(주문자 상표부착) 방식으로 도입한 것이다.

일본에 수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시장도 열리기 시작했다.

행정안전부는 2020~2021년 국가기준정보관리체계 핵심 시스템을 오라클 제품이 아닌 윤 대표의 실크로드를 도입했다.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진입장벽이 가장 높은 금융권에서도 움직였다. 지난해 11월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이 실크로드를 도입했다. 국내 금융권에서 핵심 업무 데이터 프로그램에 국산제품을 도입한 첫 사례였다.

최근 영국 국제통상부(DIT)는 창업가 지원프로그램에서 윤 대표가 개발한 실크로드 소프트웨어를 선정했다. 실크로드소프트가 영국에 글로벌 본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각종 투자 혜택은 물론 인건비로 100억원을 무상 지원해 주기로 했다.

“고향 제주에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이 자리에 서지 못했다. 가난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먹을 것과 잠자리를 항상 고민했다. 정상적인 생활이 아니었지만 주어진 환경을 탓할 겨를도 없었다. 가진 게 없다보니 억척스럽게 살면서 모든 것을 이겨내야 했다. 나를 지탱해 준 꿈이 있었기에 수천 억원을 주겠다는 인수 제의를 거절했다. 소년시절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여기서 만족했을 것이다. 고난의 기회를 준 하늘에 감사드린다.”

윤정일 실크로드소프트 대표가 경기 수원 광교테크노밸리에 있는 사무실에서 회사를 소개하고 있다.
윤정일 실크로드소프트 대표가 경기 수원 광교테크노밸리에 있는 사무실에서 회사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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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2022-09-27 18:58:11
역시 제주도민을 도와주는건 일본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