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猖披)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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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편집국장
‘창피(猖披)’라는 말은 몸가짐과 관련이 있다. 이 말은 중국 전국 시대의 유명한 문필가인 굴원(屈原)이 쓴 ‘이소경(離騷經)’에 나온다. ‘어찌 걸(桀)과 주(紂)는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옷매무새를 흩뜨린 채, 오로지 궁색한 걸음으로 지름길을 찾는구나(何桀紂之猖披兮 夫唯捷徑以窘步)’라는 구절에서 온 말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하나라의 걸왕과 은나라의 주왕이 나라가 망하는 순간에 품위와 체통을 잃고 당황하는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걸ㆍ주는 중국 역사에 있어 폭군의 상징이다. 걸왕은 매희, 주왕은 달기라는 미희에 빠져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로 숲을 이루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나날을 보냈다. 장자는 성군으로서 요ㆍ순을, 폭군으로서 걸ㆍ주를 지목했다.

이처럼 ‘창피’는 “머리는 봉두난발이요, 옷매무새는 엉망진창한 상태”를 가리킨다. 남들이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손가락질을 하니 부끄럽다. 쥐구멍이라도 들어 가고 싶다. 그래서 창피하다는 말은 부끄럽다는 말과 같다.

▲요즘 정치권이 볼썽사나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전직 대통령 부인을 둘러싼 명품 이야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여당 측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2011년 미국 국빈 방문 시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이용해 명품을 사는 데 썼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아직 확인된 건 없다”며 밝히고 있지만, ‘김윤옥 명품 가방’ ‘김윤옥 특활비 쇼핑’은 날개 돋친 듯 여론을 타고 있다. 각종 의혹에 대한 자업자득인가. 조롱하는 말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9년 전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이른바 ‘논두렁 시계’다.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 피아제 손목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말이 회자하면서 세상이 시끌시끌했다. 검찰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했지만, 여론이 확산하면서 ‘논두렁 시계’ 의혹은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폭로의 부메랑이란 말이 있다. 폭로가 마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하면 공격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 모두 상처를 입기에 십상이다. 더욱이 폭로의 배후에 뭣인가를 노리는 기심(機心ㆍ은밀한 의도)이 있으면 역풍을 맞는다. 정치적 폭로는 폭로 측의 기대와 달리 동조 여론의 상승은 커녕 비난 여론을 형성해 하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진중해야 한다. 헛발질은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발까지 다치게 할 수 있다.

민심은 변심(變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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