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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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소설 ‘대지’의 작가 펄 벅이 1960년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화다.

황혼 무렵 어느 시골길을 지나는데 진기한 풍경을 보게 됐다. 한 농부가 소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가면서 자신의 지게에도 따로 볏단을 지고 가는 것이었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서양사람의 눈에는 당연히 이상하게 비칠 광경이었다.

그녀가 농부에게 다가가 물었다. “소달구지에 볏단을 실으면 훨씬 편하게 갈 수 있을 텐데 왜 지게에 지고 가십니까?”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다. “에이,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저도 일했지만 소도 종일 일했는 걸요. 짐을 서로 나누어 져야죠.”

펄 벅은 감탄했다. “나는 저 장면 하나로 한국에서 보고 싶은 걸 다 보았다. 농부가 소의 짐을 거들어주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배려란 무엇인가’의 예로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맹인 한 사람이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손에 등불을 든 채 걸어오고 있었다. 마주친 사람이 말했다.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니는 건가요?” 맹인이 대답했다. “당신이 저와 부딪힐까 봐서요. 이 등불은 나 아닌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배려란 이처럼 상대방을 생각하고 그 마음 씀씀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요체는 마음이다. 나를 잊지 않고 챙길 때, 내 말에 귀 기울일 때, 선택권을 최대한 줄 때, 이런 순간순간 느낌이 온다는 얘기다.

배려는 어느 특정 관계에서만 필요한 건 더더욱 아니다. 친구 애인 부부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심지어 부모자식 간 신뢰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남보다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걸 배웠어도 우리는 너무나 이를 자주 망각한다.

▲아무리 배려하는 마음을 떠올려도 어떤 이들은 꿈쩍도 않는다. 다급한 상황이 아닌데도 경적을 마구 울려대는 운전자, 버스 안 노약석을 버젓이 독차지한 젊은층, 식당에서 아이가 천방지축 날뛰어도 방관하는 부모, 심지어 살인사건으로 귀결되는 층간소음…. 글로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말 못 하는 짐승도 존귀하게 여겼던 농부처럼 우리는 본디 배려를 잘하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사고가 우리 사회를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

펄 벅이 만난 시골 농부의 이야기는 배려를 잃어버린 지금의 우리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자신이 받고자 하는 대접 그대로 남을 대접해야 한다는 게 인류사회의 황금률이다. 누군가와 나누는 배려심이야말로 무한한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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