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희생이 지금의 대한민국 만들어"
"누군가의 희생이 지금의 대한민국 만들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6.25전쟁 67주년...제주 생존 호국영웅 강응인씨 인터뷰
▲ 을지무공훈장과 제주출신 전우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호국영웅 강응인씨.


“실제 전쟁을 겪어봐야 참혹함을 알죠.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6·25전쟁 67주년을 맞아 강응인씨(84·제주시 용담2동)는 빛바랜 사진과 훈장을 꺼내보였다.

사진 속 11명은 그와 생사를 함께 했던 제주 출신 분대장들이다. 이 중 2명은 전사했고 9명은 노환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2014년 국가보훈처는 강씨에게 호국영웅 칭호를 내렸다. 제주 출신 호국영웅은 고(故) 고태문 대위, 강승우·김문성 중위, 한규택 상병이 있으며 생존자는 강씨가 유일하다.

경찰도두지서 보조원으로 일하던 그는 1950년 8월 19살의 나이에 자원입대했다.

훈련을 마친 그는 육군 11사단 9연대 대전차공격대대에 배속돼 최전방으로 나갔다. 혁혁한 전공으로 2년 만에 이등병에서 이등중사까지 올라 분대장을 맡았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2년 전쟁은 대치 국면을 맞았다. 양 측은 진지를 쌓고 방어에 들어갔다.

1952년 9월 강원도 횡성 건봉산전투를 앞두고 그는 북한군으로 변장, 적진을 탐색하는 수색대대 분대장을 맡았다.

“연대장은 마지막이라며 손수 양담배에 불을 붙여줬죠. 모두가 담배를 빨며 눈물을 흘렸죠.”

적진에 침투한 대원들은 잠복해 있던 북한군에게 공격당했다.

모두 후퇴했으나 그는 3발의 총을 다리에 맞고 쓰러진 소대장(소위)을 엎고 탈출을 시도했다. 남강을 건너 8시간 만에 야전병원에 도착해 소대장은 목숨을 건졌다.

이 활약으로 그는 강릉 주문진 1군단 사령부에서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훈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달아줬다.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은 그의 소원대로 15일간의 특별휴가를 보내줬다.

정전 3일을 남겨둔 1953년 7월 24일 강원도 금성지구전투에서 고비를 맞이했다. 한 치의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한 고지전이 벌어졌다. 중공군은 인해전술로 7차례나 공세를 가했다.

“양 측이 포탄을 퍼붓다보니 한 번 전투를 치르면 산 능성이 3m씩 사라졌죠. 기관총 사수가 적탄에 맞아 부상당하자 대신 기관총을 들었는데 중공군이 쏜 박격포탄에 맞았죠.”

머리와 다리에 무수한 파편이 꽂힌 그는 긴급 후송됐다. 1953년 12월 명예 제대 후 외항선 선원으로 일했지만 후유증은 여전했다.

일본에 정박할 당시 재수술을 받아 파편 3개를 꺼냈다. 필리핀에 배가 입항할 때도 파편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는 몸에 파편이 남아 있어서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마다 ‘삑 삑’ 소리가 난다고 했다. 파편 때문에 잘 걷지도 못하고 매일 진통제를 먹고 있다.

그는 “아비규한이나 다름없던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전우들의 진짜 호국영웅”이라며 처참했던 6·25전쟁을 회고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제주출신 6·25전쟁 참전자는 8910명으로 이 중 2056명(23%)이 전사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